가정교회 사역에 대한 질문과 경험을 함께 나눔으로서 가정교회 목회를 하시는데 실질적인 도움을 드리기 위해
마련된 공간입니다.
 
 
251차 목회자 세미나 후기: 가정교회 들여다보기
김효진 2022-02-28 20:39:15 342 7

                            목 차


1. 오라! 휴스턴으로: 겨울이 없는 곳, 가정교회의 토양인가?
2. 가정교회: 교회의 기원에 대하여
3. 목장, 초원, 평원: 목양의 다른 이름
4. 낯설기 그지없는 그 이름: 목자, 목녀, 목부, 평원지기, 초원지기
5. '접대(hospitality)’의 모든 것: 각오하고 섬긴다
6. 교회: 목장의 ‘연합체’인가, ‘본부(headquarter)’인가
7. 그는 어디에: 담임목사를 찾아서
8. 목장과 교회사역: 사명인가, 비전인가
9. 돌아오는 길: 가라! 현실 속으로

1. 오라! 휴스턴으로: 겨울이 없는 곳, 가정교회의 토양인가?

언젠가는 가보고 싶었던 텍사스, 인종차별(?)의 고향이자 록 허드슨, 엘리자베스 테일러, 제인스 딘의 ‘리즈시절’이 담긴 영화 ‘자이언트’의 배경. 오하이오 콜롬버스(Columbus)에서 출발한 직항편 유나이티드 비행기는 꼭 3시간을 날아 월요일 오후 늦게 부시 공항에 착륙했다.

도착 게이트에서 여행사 직원처럼 이름을 적은 종이를 들고 있던 ‘목자님’(원치성 집사)를 만나 공항을 빠져나올 때 알았다. ‘오하이오는….. 시골이구나.’ 지난 4년 반 동안 한번도 그리 생각치 않았던 그 곳이, 불현듯 과거 속에 갇힌 낡은 도시처럼 비치다니… 뻔한 대도시가 아니라 독특한 도시 이미지를 보여준 휴스턴.

가정교회 세미나는 가정교회의 정당성을 설득하기 위한 것일까, 전파하기 위한 도구일까, 이론적 타당성을 개발하기 위한 의도일까. 가정이나 교회, 비슷해 보여도 전혀 다른 두 이름의 결합, 가정교회. 가정이 교회여야 한다는 것일까, 교회가 가정이어야 한다는 함의일까. 일단 따라가 보기로 했다.

2. 가정교회: 교회의 기원에 대하여

“가정교회는 전도모임이다.” 주강사인 이수관 목사님은 이렇게 단정했다. 이 한마디에 가정교회가 여타 ‘구역’이나 ‘셀,’ GBS, 속회 등 비슷한 이름의 다른 조직과 차별되는 뚜렷한 정체성이 모두 담겼다. 교회의 궁극적 목표, 영혼구원, ‘구령’의 열정을 실현하기 위한 원초적이고 ‘미니멀’한 정체성.

가정교회는 곧 사도 바울이 편지를 쓴 대상이었다는 해설이야 말로 가정교회가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어떤 ‘형태’였을까 헤아리기도 전에 익숙해져 버린 단어, 초대교회의 실제 모습을 오늘날 재현한 교회가 곧 가정교회라는 부연에서 ‘신약성경에 뿌리를 둔 교회’라는 원형이 드러난다.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여 교회라면 늘 있는 교제와 나눔, 말씀과 기도로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는 현장. 이게 그냥 추상적인 관념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식사와 삶 나눔을 통해 풍성히, 때론 극적으로 회심과 전도가 일어나는 환경조성. 그것을 ‘교묘’하게 의도했다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그런 ‘역사’가 일어나는 공간.

조직신학이 체계화한 복잡한 교회론은 다 잊어버려도, 실천적이고 실제적으로 교회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날 것’ 그대로 담고 있는 기초형태가 ‘가정교회’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집에서 모여, 식사하고, 성경 읽고, 기도하며 삶의 경험치를 가감없이 공유하는 일.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한 이 절차가 여기서는 왜 다를까.

3. 목장, 초원, 평원: 목양의 다른 이름

답은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는 철저한 목적지향성과 그 존재론적 정체성의 자각에 있었다. ‘분가’란 곧 명예이자 가정교회의 가치 창출이며 열매 그 자체를 상징한다. 하나의 가정교회에 인원이 늘어 다른 가정교회로 분립시키는 것이 ‘분가’다.


분가가 많아질수록 애초 시작한 가정교회가 양적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정체되지 않았다는 함의다. 신자간 수평이동을 엄격히 금하고 오로지 새신자로 채워지는 가정교회가 분가하기까지 가정교회를 책임진 목자, 목녀의 헌신없이는 분가란 애초 불가능한 일이기에 가능한 평가다.

현장 경험이 없다면 새로 온 초신자가 자기가 원하는 가정교회로 옮기는 일 자체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분위기는 새신자를 초대한 애초 가정교회가 갖는 막중한 책임감을 목원 모두가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희생의 무게를 보여주는 한마디가 ‘목녀는 거룩한 이름’이라는 말에 담겼다.

4. 낯설기 그지없는 그 이름: 목자, 목녀, 목부, 평원지기, 초원지기

사실 거북하고 낯선 이름이 목원, 목자, 목녀, 목부로 이어지는 양과 양치기를 한자어로 전환한 호칭이었다. ‘목녀’라니 얼마나 어색한가. 어색함은 그만큼 가정교회가 낯설다는 의미다. 새신자는 모두 VIP로 불린다.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저주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앞으로 구원받을 귀한 사람이라는 발상의 전환이다.

이들이 생각하는 교회는 큰 건물이 아니다. 자신들이 속한 가정교회 하나하나가 곧 교회다. 주일 예배는 각 가정교회가 연합하여 드리는 예배의 자리며 담임목사는 목자들을 양육하는 책임자인 셈이다. 목자 한사람 한사람의 활동이 곧 목원들을 향한 목양이며 목회라는 자각이 크다.

그 목자들만으로 이루어진 가정교회를 초원이라고 부른다. 초원지기란 그 목자들 중 한 사람이다. 초원지기들의 모임은 평원으로 불린다. 평원지기는 또한 목자인 동시에 초원지기이다. 일반적으로 교회가 구역으로 교인들을 나누는 계층적이고 수직적인 조직임에 반해 가정교회는 목자가 주축이 된 횡적이고 수평적인 형태다.

장년평원과 싱글평원으로 구분된 서울교회의 경우, 장년 및 싱글평원지기는 담임목사가 맡는다. 그러니까 담임목사는 소수의 최정예 목자들과 하나의 작은 목장을 이루는 셈이다. 가정교회 안의 가정교회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겠다. 그건 그들이 특권을 누려서가 아니라 그만큼 막중한 책임을 다하는 자리란 뜻이겠다.

그러니까 휴스턴 서울교회란 천여명의 신도를 거느린 단일 교회가 아니라 120개의 가정교회가 모이는 교회연합체라는 인식을 구성원들이 갖고 있다는 사실이 여타 교회와 구분되는 교회인식일 것이다. 이것을 완전히 이해하는데 며칠이 걸린 셈이다. 달리 보면 이만저만한 파격이며 모험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특징은 관념과 생각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다. 그 자체가 가정교회를 구축하는 정신(spirit)이자 기반(공감대)이기에 교회로서 기능이 가능한 거다. 침례교회이기에 개교회주의에 충실하면서도 안수집사회가 주요 안건을 검토한다. 그러나 집사회는 결정기구가 아니다. 개별 가정교회가 결정권한을 갖는다.

가정교회연합체인 휴스턴 서울교회의 담임목사는 성례전, 말씀과 양육 등 교회 고유의 책임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 그 결과 각 가정교회에서 말씀 나눔과 성경공부의 비중이 높지 않다. 그 역할은 철저히 서울교회에 ‘아웃소싱’한 형태다. ‘삶 공부’라 불리는 성경공부반 참여율이 높은 이유다.

‘생명의 삶’이라 불리는 삶 공부 시리즈가 처음에는 우리가 익숙한 생명의 삶 큐티 시리즈물을 의미하는 줄 착각하는 세미나 참석자들이 다수였다. 통칭하여 삶공부 시리즈는 각 가정교회가 전문적으로 하기 어려운 성경공부의 주된 내용을 조직신학의 주제에 따라 압축하여 말씀으로 목원들을 훈련하는 코스다.

3축과 4기둥, 곧 가족공동체를 경험하고(情)하고 삶 공부(知)를 하고 목장연합예배(意)를 드린다는 세가지 축이 가정교회의 실질적 내용이라면, 가정교회의 존재목적과 훈련방식, 사역분담과 리더십을 설명하는 네 가지 기둥은 틀이다.

5. '접대(hospitality)’의 모든 것: 각오하고 섬긴다

세상 참 많이도 다니며 온갖 좋은 거 다양하게 먹어봤다. 전문 셰프가 잘 차린 음식은 역시 이름값과 ‘돈값’을 했다. 그래서 맛은 있으나 감동을 받은 적은 없었다.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자본주의에서는 지불한만큼 그만한 효용을 제공하는 것 아닌가. 교회라면 의례히 식사제공은 기본으로 생각했다. 맛은 옵션이고.

이번엔 달랐다. 아니 다르다는 걸 깨닫는데 3일이 걸렸다. 종일 교회에서 세미나를 하니 삼시 세끼를 교회에서 해결한다는 차원이 아니었다. 의례히 먹는 식사에 진심 감동을 한 걸까. 단지 맛이 좋아서? 절대 아니다. 단지 맛의 차원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정한 섬김과 사명의 문제였다. 처음으로 그게 보였다.

그럴싸하게 고급 레스토랑이나 호텔 메뉴를 흉내 낸 음식이 아니었다. 최고의 맛을 내기위해 전문가를 고용한 까닭도 아니었다. 음식을 대접하는 일, 자체를 최고의 사명으로 알고 기도하며 최선을 다했다는 게 엿보였다. 성령이 주신 마음으로 준비했음이 메뉴, 반찬, 플레이팅 매 단계에서 드러났다. 오히려 맛은 덤이다.

치밀하고 집중하여 한끼를 준비하는 일, 그것은 사명감으로 충만한 노련한 손길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습관적으로 익숙한 솜씨의 결과가 아니었다. 마치 단 한 명의 VIP만을 위해 차린 것 같은 테이블 세팅. 이걸 준비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기도하며 성령이 주시는 마음으로 준비했다는 깨달음. 감동은 거기서 온다.

그 감동은 곧 은혜의 다른 말이다. 은혜가 있는 곳에는 쉼과 회복이 반드시 따라온다. 꼭 눈물을 흘리고 콧등이 시큰하지 않아도 잔잔하게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동심원 같은 평안함…. 음식을 앞에 두고 그런 평화를 누리다니… 만화 ‘식객’이나 ‘맛의 달인’에서 본 과장된 대사가 진짜였다고 공감되는 맛..

일주일이나 가정집에서 머문다는 건 이만저만한 ‘민폐’가 아니다. 친척도 일주일 머물면 눈총을 받는 세상이다. 아무리 목사라도, 아무 연고없는 사람을 일주일씩 편히 머물도록 성심을 다하는 건 실로 난감한 일이다. 그 불편을 감수할 만큼 목자의 가정은 따듯했고 열려 있었다. 목원들이 편하게 드나들 수 있을 법했다.

심지어 작은 강아지의 끝없는 짖음을 잠재우고자 원치성 집사는 안방침대를 떠나 침낭을 갖고 강아지 우리 옆에서 잠을 청했다는 걸 며칠 뒤에야 알았다. 민망하리만큼 미안하고 난감하면서도 나도 그만큼은 못할텐데…. 싶었다. 이걸 억지로 시킨다고 할 수 있는 일은 분명 아닐텐데…. VIP가 인간이라면 감동받지 싶다.

6. 교회: 목장의 ‘연합체’인가, ‘본부(headquarter)’인가

위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휴스톤 서울교회는 가정교회의 ‘연합체’라는 설명이 처음엔 관념적으로, 그러나 목자들과의 대화 속에서 언뜻언뜻 비치는 그들의 실제 생각을 엿볼수록 놀라움과 생경함을 목격하게 됐다. 일반적으로 교회는 ‘가는 곳’이다. 수요일, 금요일, 주일이면 ‘가서’ 예배 드리는 곳.

교회 연합체라는 게 공연한 과장처럼 들렸다. 교회의 조직과 건물 안에 둥지를 튼 가정교회라는 이름의 ‘소모임’이 있는거라는 관습적 생각을 깔고 있으니 질문의 내용은 가정교회와 기존 교회가 뭐가 다르냐에 집중됐다.

애초에 교회의 프레임 자체가 다르다는 걸 이해했다면 해소됐을 질문들이었다. 세미나 강좌는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이었다. 왜 세미나 절반은 무려 ‘삶 공부’라고 붙인 성경공부(게다가 참가자들이 전원 현직 목사인데도)에 할애하는지, 그게 가정교회의 운영과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인지, 점차 깨닫게 됐다.

연합교회체라는 서울교회의 역할은 가정교회에 초대된 새신자(즉 VIP)들을 양육하고 예수를 영접하도록 돕는 일에 전적인 책임을 지고 있음을 절박하게 보여주는 거였다. ‘삶 공부(라고 이름 붙인데에서도 나타나듯이)’를 통해 회심과 결신, 헌신과 환영, 사랑의 교제가 완성되는 듯한 최종 정착지.

가정교회와 서울교회가 한 몸이면서도 ‘따로 또 같이’를 실천하는 실천하는 긴장관계. 목자 한사람 한사람은 담임목사의 위임을 받은 실무자가 아니라 자기 목장 안에서 자신이 목원들의 삶을 전심으로 살피는 영적 지도자로서의 지위와 책임을 맡고 있었다. 이걸 모두가 공유하니 매일의 간증이 중요한 나눔의 내용이 된다.

그래서 공예배에 방해가 되는 모든 요소는 조금도 용납하지 않고 제거하는 가치관을 실천적으로 정착하게 됐다. 몇 가지 예를 통해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됐다. 일반적으로 성가대는 공기도 후 후주를 도맡는다. 또는 예배 중간에 누군가는 다음 순서를 위해 오가거나 준비물을 세팅하는 일은 흔하다.

서울교회의 주일예배에서는 이 모든 절차를 과감히 생략하거나 없앴다고 한다. 그 누구도 예배에 관객이나 조연이 되서는 안된다는 각성. 모두가 각자 예배자로  예배에 임해야 한다는 엄숙함. 그 차이가 예배의 몰입도를 결정지었다. 사실 찬양이나 설교가 남다르거나, 유별나다고 보이지 않았다.

딱 하나. 예배자체에 다른 교회서 보기 힘든 집중도가 있었다. 무대에 올라 간증을 하는 분이나, 앉아서 듣는 교인 중 ‘관객’이 보이지 않는 것. 모두가 예배의 참여자. 그런 예배자들이 예배 전체를 압도하는 분위기.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하거나 다리를 꼬고 앉아서 구경만 하는 사람을 찾아 볼 수 없었다는 것.

7. 그는 어디에: 담임목사를 찾아서

참석한 목사님들과 우스개소리처럼 한 얘기가 있다. “야아~ 이거 가정교회가 이만큼 정착되면 담임목사가 무척 편하겠는 걸? 심방도 안해, 금요철야도 없어, 새벽예배도 없어, 각자 알아서 기도하는 거야, 그럼 담목은 뭐하지? 서울교회는 아주 이상적인 걸?” 가정교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르는 외부자의 시선이다.

모든 목사는 다 기도한다. 그러나 하루 세시간을 기도에만 집중하는 목사는 드물다. 여기까지 오기까지 전임 최영기 목사님이나 현재 이수관 목사님이나 삶으로 기도가 무엇인지 보여주며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그 영성의 끊임없는 노력과 보이지 않는 수고 가운데 열매가 맺힌 거라는 걸 부인할 수 없었다.

사실 지금까지 무려 250여회 이상 세미나를 열었지만 정작 가정교회가 그만큼 정착, 확산됐는가? 그러치 않다. 그럼에도 꾸준히 이 힘든 사역을 이어가는 것은 그 자체가 사명이고 사역이기 때문이다. 꼭 서울교회 같은 가정교회의 형태를 보급, 전파하기 위함이 아니라 교회됨에 고민하고 나누는 노력이다.

이 시대에 교회의 모습은 어떻해야 하는지, 교회의 참된 모습을 목회자들이 전심으로 고민하고 돌아보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 그래서 하나님지 주신 지혜로 시대를 초월하여 교회다움의 모습을 회복하는데 작은 밀알이 되는 것. 세미나는 그것을 추구하는 거였다.

한 사람의 참가자를 재우고, 먹이고 하는 모든 일엔 비용이 든다. 이걸 모두 교회와 목자들이 기꺼이 감당하는 것. 연수를 장려하며 몇주간 연수를 온 목사들에게 쉴 공간을 제공하고 모든 교회사역을 오픈하며 자료를 공유하는 일. 하나님 앞에 투명하고 정직한 마음이 아니라면 세상 어느 기관도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그 역할과 책임, 기능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 담임목사의 일이었다. 최소한의 인원으로 교회의 기능이 원만히 움직이는 것. 관료화된 조직에서 오는 비효율을 최소화한 형태. 마치 여왕벌을 중심으로 일벌이 각각 알아서 벌꿀 공동체를 돌아가게 하는 것. 흡사 이와 같은 모습 아닌가 싶다. 

담임목사를 정점으로 120명의 목자들은 상호 수평적이다. 120명의 목자들을 케어하는 20여명의 초원지기들이 있다. 그 위에 대여섯명의 평원지기가 있는 삼중구조. 그러나 이 삼중구조는 계층적 조직형태로 자리하지 않는다. 관리, 감독 기능이 아니기 때문이다. 각각의 가정교회가 갖는 자율성은 가히 독보적이다.

안수집사회 또한 의사결정기구가 아님을 담임목사는 분명히 하고 있다. 모든 일을 의논하고 검토하고 협의하되 결정기구는 아니라니. 그럼 누가 최종 의사결정권자인가. 담임목사의 결정권한은 어디까지인가. 이런 의문은 자연스럽다. ‘운용의 묘’라는 것이 딱 들어맞는다. 견제와 균형 이전에 각자가 지니는 절제.

그 절제감 속에 양보와 타협, 하나님 앞에 동일한 종이라는 엄숙한 자기의식. 가정교회의 원칙에 종속되는 충성도. 원칙을 위한 원칙이 아닌 교회다움을 유지하기 위한 원칙의 고수. 그 가운데 맞이한 가장 큰 내적 도전이 목장수를 줄이는 일이었고, 외적 도전이 태풍 ‘하비’에 의한 타격이었다고 한다.

400여 가정이 침수되는 일은 교회가 흔들리는 강력한 외부충격이다. 이 고통을 흡수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목자들이 나서서 가정교회를 지켰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고백한다. 수긍이 된다. 오히려 내부에서 일어나는 갈등이 더 어려운 법이다. 분가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한 가정 목원만 있는 목장을 통폐합 하는 일.

가정교회는 담임목사가 없앨 수 없다는 원칙에 예외가 되는,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탄력성은 명분과 당위로 설득하지 않으면 대표자의 정당성마저 크게 훼손되기 마련이다. 내심 담임목사직까지 걸었던 승부수는 180여개 목장을 120여여 개 통폐합하는데 성공했다. 이만한 ‘리컨스트처링’을 거쳐 조직이 활력을 얻었다.

요는 끊임없는 긴장과 절제. 인간적 노력만으로는 동력이 상실되거나 용두사미 되기 일쑤인 과제들이 담임목사, 목자, 목원들 기도와 삶으로 씨름하고 나누고 교제하며 자기 삶 속에서 신앙을 체험하는 과정. 그게 일어나는 장소로써 가정교회. 이게 서울교회를 지탱하는 원동력이었다.

8. 목장과 교회사역: 사명인가, 비전인가

여기서 본질적으로 묻게 되는 질문이 나온다. 과연 가정교회의 실체인 목장은, 그 연합체인 서울교회는, 무엇이 사명이고 비전인가. 목장 자체가 비전인가. 아니면 목장의 활동이 사명인가. 이걸 어떻게 구분하는가. 미국연합감리교회의 공통된 비전은 “세상을 변화(transformation)시키기 위해 제자를 삼는 일”이다.

휴스턴 서울교회는 무엇을 지향하는가. 제자양성과 제자도라는 기독교 보편의 과제를 어떻게 교회 현장에 접목하였을까. 주보에 간단히 한 줄 나와있었다. 그 한 줄에 충분히 가정교회의 목적 자체가 담겼다. “평신도 사역자를 키우는 교회” 목자가 곧 평신도 사역자임을 밝히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서울교회는 충분히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셈이다. 잘 훈련된, 거의 목사와 동급인 평신도 사역자가 120명이나 된다고 자신있게 말할수 있는 서울의 교회가 몇 개나 될까. 눈에 띄는 안내문은 하나가 더 있다. “이것이 알고 싶다”고 적힌 작은 팜플렛. 교회 구성원이 누구며 무슨 역할을 하는지 자세히 적혀 있다.

입교 절차와 과정에 대한 안내는 단순한 가이드가 아니다. 왜 그래야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입장과 설명을 담고 있다. ‘따르거나, 떠나거나.’ 양자택일 하라는 정언명령과도 같은 안내문이다. 그러니 일단 여기에 정착하기로 한 이상, 군소리가 나올 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든다. 그만한 자기각오를 다지고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처음에 언급했던 ‘분가’와 일맥상통함을 알수 있다. 분가란 곧 목장에 목원이 넘쳐 새로운 목장을 만드는 일, 즉 목장의 ‘재생산’이다. 한마디로 교회에 교인이 차고 넘쳐 근처에 교회를 새로 지워 기존 교인들을 그곳으로 보내는 일과 같다. 당연히 목사도 필요하다. 가정교회에선 그 역할을 새로운 목자가 맡는다.

그 목자가 새로 세워지는 평신도 사역자가 되는거다. 기존 목자는 새로운 목자를 배출하는 거다. 그 새로운 목자를 선정하고 분가를 시켜 새롭게 목장을 만드는 일. 그것이 얼마나 벅차고 힘들지만 보람찬 일인지 목자를 해본 사람만이 누리는 특권인데 그것이야말로 목사의 사명과 동일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렇기에 목원 하나를 둘러싸고 드물게 일어나는 목자들 끼리의 갈등은 심각하다. 동시에 그 갈등을 해소하고 하나되는 과정 자체가 곧 교회됨의 강력한 동인으로 작용하며 그들의 스토리는 살아있는 간증으로 거의 실시간 주일예배를 통해 공개적으로 공유된다. 비밀이 있을 수 없다. 교회의 투명성은 곧 ‘저력’으로 작용한다.

이런 선순환구조를 정착시키는 일, 그것이 서울교회라는 가정교회 연합체와 담임목사가 전담하는 사명이며 사역의 전부라는 것이다. 부차적인 일에 들어가는 품을 최소화하고 교회와 목사 본연의 일에 전념하는 환경. 이상적으로 비치는 건 당연하다. 여기까지 오기까지 흘린 눈물과 기도는 별론으로 하고 말이다.

9. 돌아오는 길: 가라! 현실 속으로

대략 여기까지가 서울교회에서 열린 가정교회 목회자 세미나에서 보고 깨달은 내용이다. 사실 기록한 내용보다 더 많을텐데 기억의 한계로 다 적지 못한 것도 상당하리라 본다. 다만, 본 세미나의 의미, 가치를 개인적으로 정리하여 향후 가정교회 세미나에 관심있는 목회자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여기 기록한 내용은 가정교회에 관한 서울교회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 세미나와 목자들과의 대화와 만남을 통해 듣고 터득한 내용에 개인적인 소회를 얹어 요약 정리했다. 당장 서울교회가 갖춘 가정교회의 형식을 그대로 따라하기는 무리다. 십년을 보고 준비하라는 조언은 현실적이다.

중요한건 가정교회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디에서 무슨 형태이건, 예배의 자리, 교회라 불릴만한 모임이 생긴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을 지향해야하는지 뚜렷하고 실제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있느냐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 세미나가 던진 화두는 실로 구체적이고 실천적이며 적용가능한 가이드라인을 충분히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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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7 목사가 알고 싶은 성도의 속마음 (13)   최영기 목사 2022.05.16 789 13
3196 개척 가정교회 부흥 비결 (충남보령 다니고싶은교회) (21)   최영기 목사 2022.05.10 824 14
3195      평신도 동역자는 기다리지 말고 만들어야 (11) 최영기 목사 2022.05.11 576 14
3194 (제16차 목연수) "주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하겠습니다." (7)   박용종 2022.05.10 312 9
3193 듣기만 한 것과 보고 들을 것에 차이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2)   이후선 2022.05.05 251 1
3192 멘토링과 코칭을 통한 가정교회 사역 세미나 (11)   주계희 2022.05.05 248 2
3191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른 때! (연수보고) 전영구선교사 2022.04.24 279 1
3190 갇혔다 풀린 자를 돌아보았고... (9) 계강현 2022.04.18 377 7
3189 “코로나때문에코로나덕분에(제자교회연수보고서)” (21)   김정일 2022.04.07 483 14
3188 한 영혼 구원을 위해 살겠습니다 (4)   이종태 2022.04.04 314 0
3187 “단순하게 따라가면 닮아갑니다”(연수보고) (3)   최병찬 2022.03.29 330 0
3186 제100차 목회자 컨퍼런스 후기 (살라띠가 JHB (새생명교회) (17) 하영광 2022.03.25 385 7
3185 가정교회는 일상, 삶 자체 이다. ( 제주지역 가정교회 일일특강) (9)   이윤정 2022.03.08 578 4
3184 냉탕에 퍽 깨이고 갑니다.(연수보고) (14)   남기환 2022.03.07 546 6
3183 열탕에 확 데이고 갑니다 (연수보고) (9)   조석연 2022.03.07 336 5
3182 원탕에 푹 담그고 갑니다.(연수보고) (8)   김두만 2022.03.07 35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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