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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을 때가 가장 빠른 때! (연수보고)
전영구선교사 2022-04-24 00:08:27 248 1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  (연수 보고)

* 전영구 선교사 & 전부희 선교사 (중미 도미니카공회국 사랑의 교회)

* 연수기간 :  2022년 4월 12일(화) 부터 4월 24일 (주일) : 2주간


1. 연수동기


A. 선교사가 되기 까지 

(1) 38세에 소명을 받고 늦은 나이에 신학을 하였고, 소명대로 선교사로 나가고 싶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선교사의 길을 열어주시지 않고, 서울에서 단독 목회를 하게 하셨다.  물론 신학생 시절, 총신대 신대원에서 선교학회장도 하였고, 지금의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합동)의 GMS 의 전신인, MTI (Missionary Training Institute)의 제1회 졸업생으로, 또한 조동진 박사님의 "바울의 집"에서 선교훈련도 열심히 받았었다.  아마도 유창한(?) 한국어로도 어려운 개척목회를 아무런 경험없이 언어가 다른 선교지에서 교회 개척을 할 수 없지 않겠느냐? 는 것이 하나님의 생각이셨던 것 같다.  


단독 목회 시절, 미국의 Dr. Johnson 목사님이 총재이신 I.M.A.(International Missionary Advance)의 한국지부의 사무국장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1982년도 6월에 제1회 한민족 세계선교대회가 Pasadena 에서 열렸고, 제가 목사님들, 장로님들, 권사님들 총 48명을 이끌고 선교대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대회기간중, (고) 맥가블란 박사님이 대회기간중 녹음실의 바란티어를 원하셔서 대회 기간 동안 녹음실에서 전체 녹음 담당과 사진을 촬영하게 되었다.  마음에 쏙 들어서 미국의 모 선교 단체의 총무직을 제의 받고 곧 바로 미국으로 올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되었었다.  그러나 선교회 사무실 책상에서의 선교행정 보다 필드를 뛰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여 그 좋은 기회를 스스로 거절하였다.  그러던 중 갑자기 뉴욕의 퀸즈장로교회롤 부터 청빙을 받게 되었다. 중국선교사로 보내주겠다는 조건 하에 ....  계산해 보니 미국으로의 이민을 올 때까지 ..  서울에서의 단독목회기간이 정확히 10년간이었다.  그러나 이민 목회도 잠시이고, 중미 도미니카공화국에 이단 건이 발생하여 갑자기 소방수로 나를 파송하게 되었다.  절박한 상황 속에 드디어 일선 현장 선교사가 된 것이다. 


B. "한 영혼 구하기!" 에 "올인" 하게 되기 까지

그렇게도 원하던 현장 선교사가 되어 정말 열심히 뛰면서 교회를 개척하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사역에 임했다.  그러던 중 1998년 4월 25일, 잊지 못할 5인조 무장 강도의 가택 침입 사건으로 일생 일대의 곤욕을 치루게 되었다.  권총과 사냥 총, 예리한 칼 등으로 위협을 받으며, 손발이 묶이우고, 쇠파이프로 구타까지 당하며, 선교장비 일체를 차 떼기로 실어가 버렸다.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아난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그러나 나를 3개월 동안 괴롭힌 것은...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 다는 데... 왜 일선 선교사로 헌신하여 선교지로 온 나에게 이러한 곤욕을 하나님께서 허락을 하셨느냐?" 는 것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는 것이었다.   참으로 눈물나게 부르짖고 응답을 바랐으나 하나님께서는 3개월이 지나서야 말씀으로 응답을 하셨다.  "야~ 전영구야!  너는 달란트도 많아~ 그것도 네 것이 아니라 내가 네게 준 것이야.  네가 그렇게도 애걸 복걸하면서 목숨을 살려 달라고 한.. 네 생명도 네 것이 아니야!  네 생명도 내가 네게 준 것이야!  네 생명의 주인은 바로 나다!"  .... 그 말씀을 듣고 나는 머리를 쇠망치로 다시 한번 얻어 맞은 것 같이 실신할 정도였다.  대형교회에서 "전도폭발!" 사역과 "태신자 전도운동!" 을 맡았었으며, 장로님들, 안수집사님들, 권사님들을 가르쳤었지만... 나 스스로 한 영혼을 붇잡고 구해 보지를 못했었다.  그후로 내 스스로가 변하기 시작했다.  "한 영혼 구하기에 올인하기!"  .... 그 후로 나는 현지인 교회를 4개나 더 개척하여 도미니카공화국 Bonao 라는 시골 산악 소도시에 6개,  Santo Domingo 와 Bonao 도시 사이의 소도시, Villa Altagracias 라는 도시에 1개의 현지인 교회를 개척하여 총 7개의 현지인 교회를 개척하였다.

그러면서 우리 집에 현지인 각 교회의 담임사역자와 교회 리더 등을 불러 먹이우면서, 성경을 가르치면서 제자훈련에 올인하게 되었다.  한 주간에 어른들, 청소년들..54명 정도를 가르치고 있었다.  시골 광산촌도 찾아가서 (먹을 것 마실 것 까지 구입하여...) 제자훈련을 하곤 하였다.


C. 현지인 목회자를 위한 "SEMINARIO BIBLICO" 신학교 총 책임자가 되기 까지

어느 사이에 선교사 생활이 28년차가 되어서... 도미니카공화국의 한인 선교사들 중에서는 제일 연장자가 되었지만...  자타가 공인(?) 하는 학구적이고, 열정이 식지 않은 선교사로 인정을 받아서... 수도 Santo Domingo 외곽지역인 Villa Mella 지역에 위치한 YWAM base 내에 옛날 삼미그릅 총수였던, 김현철 선교사가 갑자가 신학교와 성막을 세우게 되었던 차에...  나를 신학교 총책임자로 청빙을 원하던 차에 2개월 만에 수락하고, 25년간 사역하던 Bonao 에서 주거지를 옮기게 되었다.  중남미 대부분의 현지인 목회자들은 자칭 목회자라고는 하지만 정규적인 신학 교육과 목회 교육을 받아보지 못한 채로 목회를 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목회자  양성 또한 교회 개척 못지 않게.. 아니 더 중요한 사역 임을 절감하게 되었고.. 노년에 사명으로 알아서 올인하게 되었다. 정원 25명의 목회자로 전원 숙식을 제공하며 풀 장학생으로 키우고 있다.   그러나 YWAM base 에서 내가 개척한 사랑의 교회 등 Bonao 지역 까지는 자동차로 겨우 시간 거리이기에 한 달에 한 차례 씩은 반드시 내 교회를 돌아 보고 있다.  길고 긴 팬더믹 기간에도 돌아보면서 교회문을 열지 못해 어려움을 걲는 현지인 목회자들의 생활비 까지 책임을 지곤 했었다. 


D. 가정교회를 알게 되기 까지

내가 개척한 Bonao 시의 <믿음의 교회>에 까지, 한기학 선교사가 사역하던 "El Puerto" 지역까지... 휴스턴 서울교회의 우물 사역 팀이 다녀가셨었다.  그러나 우물 사역만 열심히 하고 돌아갔을 뿐!  가정교회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알려주지도 아니하였다.  그러던 중...내가 25년간의 Bonao 교회 사역을 현지인 사역자에게 맡기고.. Villa Mella YWAM base 로 옮기고, 신학교 사역에 올인을 할 때에 또 다시 휴스턴 서울교회의 우물사역팀이 센터로 오시게 되었다.  센터 내에서 조차 어느 누구도 가정교회에 대해서 권하지도 아니했었는데... 그러던 중 조용준 집사님과 이준희 목자님과 카톡으로 연락을 간간히 하면서... <한번 가보자!>  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와 아내가 지난 2022년 2월 15일 부터 2월 20일 까지의 <제251차 목회자를 위한 가정교회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다.  수차례 우물사역팀이 다녀가면서도 왜 가정교회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소개를  하지 않았는지를 알 수가 없었고... 늦게 나마 스스로 찾아왔지만 무척이나 늦게 왔다는 아쉬움과 안타까움 속에서... 감동과 감격 속에 <제251차 목회자를 위한 가정교회 세미나>를 마치고 곧바로 도미니카공화국으로 돌아갔다.  물론 테이블에 전시한 가정교회에 대한 각종 서적과 CD, DVD, mp3 등등을 거의 대부분 구입해 갔다.  


E. 연수 동기

선교지로 돌아와서 나의 사역 일정대로 신학교 사역을 진행하면서 틈틈이 가정교회에 대한 책도 읽고 CD, DVD 등도 보았다.  <제251차 목회자를 위한 가정교회 세미나> 를 마치면서...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 라는 생각에서... 곧바로 서울교회 사무실에서 2주간의 연수교육을 미리 신청을 하였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연수교육에 임하게 되었는바... 어느 새 2주간의 연수기간이 지나고 연수 보고서를 쓰게 되었다.   정말 연수 교육차 오기를 잘했고, 세미나 기간 중에 배운 것들을 정리 및 재확인할 수가 있었기에 정말 좋았다.



2. 연수에서 얻게 된 소득


A. 이수관 목사님과의 첫 면담

2022년 4월 11일(월) 밤 11시가 넘어서 연수관에 도착하자 여행의 피로에 골아 떨어져 버렸다.  그러나 다음 날, 4월 12일(화) 오전 11시부터 이수관 목사님과의 첫 면담 시간이었기에 긴장하면서 만남을 가졌다.  언제나 웃는 얼굴에 미소년 같은 모습이 편안함을 주었다.  이미 이수관 목사님 자신이 제가 신학교 총책임자로 오기 전에 YWAM base 를 다녀가셨었고, 주위환경을 이미 아시고 계셨다.   선교사로 처음에 선교지에 도착해서 부터 가정교회를 알았었다면 도미니카공화국에서의 25년간 나의 교회 개척사역이 사뭇 달랐을 것이었다.  이미 기존 예배 형식, 기존 현지 문화에 맞게 굳어진(?) 상태를 가정교회로 탈바꿈 전환시킨다는 것이 일개 선교사 혼자의 힘으로는 무척이나 어렵다는 것을 아시고... 제게 다음번 <목회자를 위한 가정교회 세미나>에 현지 교회의 현지인 사역자를 데리고 와서 현지인 사역자가 통역을 통해서라도 직접 배울 것을 제의해 주셨다.   이미 서울교회에는 남미에서 오랬동안 살아오신 분이 계시고, 한국어 보다 도" 에스빠뇰" 이 오히려 더 편한 일꾼도 있으며, 그런 경험도 교회 자체 내에 있다는 희소식이었다.   


또한 내가 총 책임을 맡고 있는 현지인 목회자들을 위한 "Seminario Biblico" 우리 신학교에서는 신학생인, 목회자 자신이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만 그네들이 목회하고 있는 각자 교회의 교인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가르쳐 줄 수 있지 않겠느냐? 고 하시면서 신학교에서 "생명의 삶" 을 가르쳐 보라는 제시를 해 주셨습니디.   물론 제가 조직신학을 2학기에 걸쳐서 교수하고는 있으나, 일종의 쉬운 조직신학인 "생명의 삶"을 다시 가르치므로 구원의 확신을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스스로 신학교 로고도 직접 도안도 헸고, 커리큐럼도 상세히 짜고 시행중이며, 외부에서 자비량 교수님이 못 올 경우 제가 대타로 그 과목을 강의해야만 하는 특별한 신학교 이기도 하기에 "생명의 삶" 과목을 넣는 것은 제 소관으로 가능한 일이기도 하여 무척이나 홀가분 해 졌습니다. 


무론 잘 알다시피...제자는 가르쳐서만 되는 것이 아니기에... 모판 가정교회가 있어야만 하므로, 교인 수 200명으로 나름대로 성장한 "사랑의 교회" (Iglesia Presbiteriana del Amor) 를 가정교회로 전환 시키라고 제의를 해 주셨습니다.   물론 현지인 사역자 만으로는 가정교회로의 전환이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선교사인 나 자신이 또 다시 재헌신을 해야만 하겠습니다.   이 "사랑의 교회" 를 개척하고 교회당을 건축하다가 5인조 무장강도의 가택 침입사건을 만나서 곤역을 치룬 것입니다.  어찌보면 "사랑의 교회" 는 내 목숨을 담보로 세워진 교회이기도 합니다.  여하간에 첫날 이수관 목사님과의 면담에서 해답을 얻고 홀가분 해 졌으니 연수를 온 보람과 방법을 첫날에 얻게 된 것이기도 합니다.


B. "생명의 삶" 에스빠뇰 교재와 현지인 사역자를 위한 통역자

가정교회와 신학교에서 필요한 "생명의 삶" 에스빠뇰 교재도 뉴욕의 집으로 우송이 되게 되었으며, 우리 현지인 사역자들 3명을 내가 서울교회 가정교회 세미나에 모시고 올 경우, 에스빠뇰로 동시통역을 해 주실 귀한 일꾼도 이미 만나 보았고, 카톡으로 연결되어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물론 신동일 목사님을 통해서도 영어권에서도 가정교회 세미나를 동시통역 해 주실 중남미 출신 현지인도 확보가 되어 넘넘 감사한 일이니다. 


C. 30년 만에 한국어로 맞이한 감격의 부활절 예배(칸타타)의 큰 기쁨

수년 전에 아내와 함께 모국인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어서 인천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아내가 무심코 한 말 ... "와~  여기는 한국 사람이 엄청나게 많네?"  아내가 갑자기 불쌍해 보여서 콧날이 시큰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사람이 외국에서 선교사로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과거 25년간은 Bonao 라는 산악 소도시에서 교회를 개퍽하며 살아왔고, 지금은 2년 6개월간 그래도 한국인이 몇 명 있는 센터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지만... 우리의 마음속에는 고국에 대한 향수가 있습니다.  지난 4월 17일 주일에 서울교회에서 우리 부부는 실로 오랫만에 부활절 예배를 멋지게 맞이했습니다.  오죽이나 감동적이었으면 아내의 말이 칸타타를 하시는 찬양대 모두가 천사로 보였다고...


D. 2차례의 STAFF 회의 참관

다른 교회에서는 볼 수 없는 진풍경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자유스럽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가슴이 훈훈했습니다.  이수관 목사님의 미소와 자상하심, 자기 사역에 집중할 수 있는 전문적인 사역 분담. 북 나눔의 특이성, 신동일 목사님과의 만남은 우연이라기 보다 필연이었던 것 같습니다.  


E. 삶공부 

<생명의 삶>은 마지막 강의시간을 참관했으며, 다음 주에는 시험을 치루기에 대신 <경건의 삶>을 참관을 했습니다.  권은혜 목녀님의 강사로서 섬기시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고, 분위기가 넘넘 폭은했고, 자매님들의 나눔이 솔직했고 너무나도 진지했습니다.  따스함에 푹 빠졌습니다.  

<새로운 삶> 시간은 나로서는 좋았는데 실내의 냉방시설이 너무 추워서 아내 전부희 선교사는 이 시간에 참석했다가 그만 심한 감기에 걸려서 이후로 내내 고생을 했습니다.  우리 부부가 넘넘 갇동적이었던 것은 <예수 영접 모임 : DVD 시청> 시간이었습니다.  오래된 DVD 이기도 했기에 이수관 목사님이 넘넘 젊고 부드러운 미소의 얼굴에 아주 부드럽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넘어가시면서 자세히 예수를 영접케 하시는 노련함이 넘넘 좋았습니다.  


F. 국제가사원 총무 성승형 집사님의 토요일 면담

토요일 새벽기도회시 기도순서를 맡으셔서 기도릏 하셨었는데... 다른 때와 사뭇 다르게 내 입에서 아멘 아멘이 수없이 나왔습니다.  그 이유를 면답시 비로서 알게 되었습니다.  넘넘 훌륭한 내용의 면담이었습니다.  감동이었습니다.  이 성승현 집사님을 통해서 가정교회가 움직여 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G. 집사회 참관

2차례의 집사회 참관... 안수하시는 풍경도 인상적이었으며, 특히 4월 23일 마지막 토요일에는 호텔에서의 모임이 넘넘 좋았습니다.  담임목사님 외에 모든 교회의 Staff, 거의 모든 집사님들이 다 모였고, 집사장을 통해서의 회의가 아주 이상적이었습니다.  새로 안수집사님이 되신 세 분의 한턱이라고 해도 너넘 좋았습니다.  결국 서울교회를 움직여 나가시는 분들이 다 모인 것이었습니다.  



3. 참으로 고마우신 분들


A. 목자면담 

* 권재영 목자 / 권승아 목녀

* 윤  송 목자

* 하원천 목자

* 김경선 목자 / 김미영 목녀

* 김홍군 목자 / 김은미 목녀

* 황길동 목자 / 유다운 목녀

* 은상호 목자 / 정효정 목녀

* 신동일 목사님 내와분

* 곽인순 목자 / 괵성재 목부

* 경우진 목자 / 정미예 목녀


B. 기 타 

* 초원지기 백대진 집사님 내외 분 ... 귀한 헌신에 고개 숙여 고아움을 전합니다.

* 백연숙 간사님... 처음으로 가정교회 세미나 신청시 부터, 연수훈련으로 올 때 까지 모든 행정절차에서 실제적으로 도움 주셔서 고맙고 감사합니다.

* 윤석현 목자님 내외분... 아시지요?  귀한 섬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 이준희 목자님... 카톡으로 부터 만나서도 넘넘 고마웠습니다.

* 에르모소 목장의 유희곤 목자님 & 유미나 목녀님... 늘 힘이 되어 고맙습니다.



4. 마치면서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

가정교회를 늦게 알았지만... 

오늘이 내 인생의 가장 젊을 때이기도 합니다.  내일이면 오늘이 과거가 되겠지요.  날마다 오늘에 열심히 살아가기를 소원합니다.

선교사에게는 은퇴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시고, 언제나 소명 받을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서 감사함과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아만 간다면... 열정이 식기 전에 시작하려고 합니다.  

시작이 반 입니다.  이제 반이 남은 셈입니다.  여러분들 모두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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