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보고
송영일 목사 2011-06-01 10:01:02 1774 6

연수보고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도록 비전 주심을 찬양 합니다

 

I. 들어가면서

 

코끼리를 생전 본 적이 없는 맹인들이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서로 자기의 말이 옳다고 다투고 있었다.

코끼리의 코를 만져본 사람은 코끼리는 긴 고무호스처럼 생겼다고 말했다.

그러자 코끼리의 굵은 다리를 만져 본 사람은 ‘아니다. 내가 직접 만져 보았는데 코끼리는 굵은 통나무처럼 생겼다’고 강조했다.

이번에는 코끼리의 넓은 몸통을 만져 본 사람은 ‘무슨 소리냐. 내가 직접 만져 보았는데 코끼리는 넓고 평평한 흙더미 같았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코끼리의 귀를 만져 본 사람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만져 본 코끼리는 가장 큰 부체처럼 넓게 생겼다’고 말했다.

감을 잡았겠지만 코끼리의 전체를 본 적이 없는 맹인들은 코끼리의 일부분만을 만져보고 그것이 코끼리인 줄 착각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II. 연수를 받기 전에는

 

휴스턴에 목회를 한지 벌써 5년이 흘렀다. 나름 무진장 애를 썼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쉼 없이 목회를 했다. 많은 순간 좌절도 경험했다.

처음 휴스턴지역에 왔을 때 많은 목회자님들과 성도님들을 통해서 서울 교회가 어떻고 최 목사님이 어떻고 가정교회가 어떻고 다들 자기들의 말이 옳다고 맹인들처럼 강조했다. 만일 그 근처라도 근접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말했다. 서울교회의 목회자 세미나라고 참석했다가는 왕따를 당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내심 서울교회의 사모함이 있었다. 그리고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왜 서울 교회는 별 문제가 없이 든든히 서 있을까?’ ‘왜 서울 교회는 평신도들이 전도 중심적으로 살아갈까?’ ‘왜 서울 교회는 휴스턴을 제외한 다른 지역과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이름이 알려졌을까?’ ‘서울 교회에서 1년에 몇 번씩 목회자 세미나와 평신도 세미나를 실시한다는데 도대체 무엇을 가르칠까?’ 뭔가 중요한 것을 가르치는 것 같았고 많은 목회자들이 서울교회 세미나에 참석하는 것을 보고 꼭 참석해야겠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아마 그것은 자신이 목회하고 있는 교회의 처지와 교회성장의 정체와 현실 목회의 한계성 때문에 더욱 간절했는지 모른다. 그동안 제자훈련을 통하여 평신도 사역자들을 만들어 내려했지만 헌신된 자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말씀의 지식은 높아지고 말씀훈련은 모두들 좋아하지만 헌신을 끌어 낼 수가 없었다. 뭔가 돌파구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짓눌림이 있었다. 교회의 영적인 변화는 물론 뭔가를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부담감과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최 목사님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지난 2월에 목회자 세미나를 신청했는데 겨우 턱걸이로(?) 대기자 명단에 들어갔다가 참석하게 되었고 이번에 목회자 연수에 등록하게 되었다. 이번에 목회자 연수에 참석하게 된 것은 최 목사님의 권면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용기가 필요했다. 맹인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교인들의 오해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연수에 오기 전부터 우리 성도님들은 쑥떡거리기 시작했다. ‘이번에 연수까지 가시는 걸 보면 갔다 와서 분명 가정교회 한다고 할 꺼다’ ‘그러면 나는 안 해’ ‘한 달이 두 번 만나는 것도 힘든데 매주 어떻게 해’ 그러면서 색안경은 쓰고 바라보는 것 같았다. 마치 뭔가 자신들에게 해를 끼칠 것 같은 눈빛이었다. 그래서인지 슬픈 일이지만 ‘목사님, 잘 다녀오세요.’ 라는 말을 한 마디도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III. 연수를 통해서

 

이번 연수를 통해서 코끼리의 실체를 직접 보았다. 코끼리는 고무호스도 아니고 통나무도 아니고 넓고 큰 흙무덤이도 아니고 큰 부체모양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삶 공부를 통해서 영적인 성장과 회복과 변화의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가정교회라는 현장을 통해서 사랑의 섬김을 직접 실천하고 있었다. 거기는 훈련의 장이었고 섬김의 장이었다. 그리고 종합예술 같은 연합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잔잔한 성령의 임재 속에서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예배를 드렸다.

서울교회가 별 어려움이 없이 든든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는 핵심을 발견하게 되었다. 먼저는 실천의 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교회의 핵심 리더들은 섬김의 삶에 집중하고 있다. 영혼구원이라는 가장 핵심적인 대사명을 향하여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혼구원이라는 사역의 동기가 확실했다. 영혼구원이라는 목적이 헌신을 끌어냈다. 모두들 한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교회의 영향력 있는 핵심 리더들이 한 비전을 가지고 한 방향을 향하여 돌진하고 있는데 그 외에 무엇이 보이겠는가? 전체 회중의 15%의 영향력 있는 헌신된 리더들이 다 함께 목자심정을 가지고 목장의 양떼들을 돌보는 목양의 일에 집중하는데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그들은 다 돌보는 자들이요, 섬기는 자들이요, 가르치는 자들이요, 본을 보이려하는 자들이요, 위로자들이요,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자들로 섬기고 있다. 그러니 문제가 일어나면 그 문제를 흡수해 버리는 흡수벽의 역할을 한다고 할까. 지상 교회에게 문제가 없는 교회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말하고 싶은 건 이것이다. 서울교회는 문제가 있지만 문제로 확대되지 않고 소멸된다는 것이다.

목장에서는 하나님의 소원이 날마다 이루어지고 있다. 영혼구원이라는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 서울교회에 성령의 역사가 어떻게 해서 일어나고 있을까 궁금했다. 그런데 이유가 있었다.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 목장사역을 하나님이 기뻐하심으로 자연적으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다고 믿는다. 영혼구원을 위해 사랑과 섬김과 희생과 눈물과 참음과 불쌍히 여김을 통해 불신자들을 섬긴다. 희생의 사랑의 섬김이 불신자들을 감동시킨다. 사랑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목자들은 이렇게 헌신한다. 그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성품이 나타난다.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드러난다. 어디서 이런 섬김의 리더십이 일어날까? 물론 그것은 영혼구원을 통한 감격이다. 보람이다. 기쁨이다. 그리고 삶공부를 통해서 영적인 충전을 받는다. 그리고 연합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는다. 그것은 섬김에 대한 하나의 보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가정교회가 신약교회로서 합당한 신학적인 이론이 정립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누구에게 내어 놓아도 이론적인 체계가 확립되어 있었다. 이건 중요한 강점이 아닐 수 없다. 그 동안 미국에 수많은 Charismatic Movement와 Issue들이 얼마나 많이 등장했는가? Pensacola의 성령사역과 여러 가지 내적치유사역들이 등장했다. 갑자기 사람들이 모여들고 엄청난 영적운동과 치유의 역사가 일어났다. 그런데 많은 오해를 받으면서 모두 다 갑자기 어느 날 사그라져버렸다. 왜? 합당한 신학적 이론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질문에 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교회의 가정교회는 신학적이고 성경적인 이론이 확실하다는 점이다. 교회의 존재목적이 분명하다. 목장 안에서 제자양육을 통해서 재생산이 일어난다. 재생산을 통해서 하늘나라가 확장되어 간다. 영적인 리더자로서의 목회자는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여 섬긴다. 교회가 가야할 확실한 방향을 제시한다. 그리고 영적인 리더십과 섬김의 리더십이 있다. 특히 담임목사의 기도하는 리더십은 목자들은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본이 된다는 점이다. 특히 이점에 대해서 많은 도전과 회개를 하게 되었다. 서울교회는 기도하는 교회다. 목자들은 목양식구들을 위해 기도한다. VIP들을 위해 모두 기도한다.

가정교회와 삶공부와 연합예배라는 세 가지 축이 날마다 순환하고 있다. 이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치우치지 않는다. 한 목장에서도 이 세 가지가 순환하고 있고 초원에서도 순환하고 있고 사역팀에도 순환하고 있고 교회에 전체적으로도 순환하고 있다. 영어회중에서 어린이들에게도 순환하고 있다. 한 가정에서도 순환하고 있다. 삶의 현장에서 계속적인 영적인 회복과 성장을 위해 삶공부는 그들에게 새로운 도전과 은혜로 충만케 해 준다. 삶공부를 통해서 영적인 재충전을 받으면 다시금 섬김의 현장으로 뛰어 든다. 그리고 연합예배를 통해서 은혜와 말씀으로 보상을 받는다. 한 주간 동안 흘렸던 땀과 눈물이 그들의 심령에 흐르고 있기에 주일이 기다려진다. 그리고 예배당 문 앞에 들어서면 나를 위해 기다려 주신 나의 사랑하는 구원자의 품에 안기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낀다. 채 자리에 앉기도 전에 그들의 심령 속에서는 성령님의 위로함이 그들의 마음을 울린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들은 이렇게 고백한다. ‘아버지, 내가 왔어요.’ 그리고 말할 수 없는 은혜와 감사로 눈시울을 적신다. 그런데 어찌 예배에 은혜를 받지 않을 수 있을까? 어찌 행복하기 않을 수 있을까? 어찌 보람이 없겠는가? 어찌 예배 중에 하나님을 만나지 않을 수 있을까? 어찌 변화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찌 충성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 행복한 그대들이여! 그대들은 좋겠다. 그대들은 훗날 주님 앞에 서는 날 드릴 것이 있어 좋겠다. 그대들은 훗날에 주님 앞에 서는 날 주님으로부터 칭찬받을 것이 있어 좋겠다.

세 가지 축의 한 중앙에는 세 가지 축을 지원하고 이끌어가는 담임목사님의 섬김의 리더십이 받들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밖에서 들은 최 목사님과 지난 2월 세미나에서 직접 체험한 최 목사님은 전혀 다른 모습이라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 이번 연수 기간 동안에 아쉽지만 집회관계로 출타한 최 목사님을 직접 뵐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에서나 최 목사님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어떻게? 교회 안에 최 목사님이 자리 잡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최 목사님이 안 계시는데 계신다는 점이다. 어디에서나 최 목사님이 계신다. 누구에게나 그분이 계신다. 성도님들은 출타하신 목사님을 그리워하고 사모하고 있었다. 아니 그들의 맘속에 계셨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진심으로 그들은 목회자를 사랑했다. 존경했다. 칭찬했다.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들은 목회자를 생각하면서 눈시울들을 적셨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이게 뭘까? 무엇이 이렇게 만들 수 있을까? 총 12분의 목자님들과 면담의 기회를 가졌다. 그분들은 포장하지도 않았다.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보여주셨다. 그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존경심이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모두들 문물을 글썽이며 연혼구원의 경험을 간증해 주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한결 같이 감격의 눈물이 고여 있었다. 모든 목자님들과 목녀님들과 초원지기들과의 면담을 통해서 똑 같은 질문을 드렸다.

“오늘의 서울 교회가 있게 된 가장 중요한 것이 있었다면 무엇인가요?”

한결같이 그리고 서슴없이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최 목사님의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매일 새벽 5시부터 8시까지 교회와 교인들을 위해서 강단 밑에서 기도하신다는 것에 대해서 모두들 감동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원칙을 준수하고 목자들을 격려하고 세워주신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있었다. 담임목사님이 모두들의 마음속에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 무엇이, 이런 아름다운 관계를 가지질 수 있게 되었을까? 그 이유를 알았을 때 한 교회의 담임목사로서 한 없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물론 회개와 결단의 기회가 되었다. 그동안 변하지 않는 성도들을 맘속으로 Blame하던 부끄러운 자신을 회개하게 되었다. ‘과연 나는 그들을 위하여 무엇을 했는가?’ ‘과연 나는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 ‘과연 나는 성도들을 위하여 얼마나 기도하고 있는가?’ ‘너는 무엇을 했니?’라고 하신 주님의 음성을 듣고 부끄러워 울었다.

 

IV. 가로놓인 골리앗과 요단강 앞에서

 

여러 가지 주어진 숙제들을 앞으로 어떻게 지혜롭게 풀어 나갈 것인가? ‘힘들어서 못해요’라고 말하는 그들에게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동기와 목적을 ‘어떻게 진심으로 전할 것인가?’ 개혁의 기로에 서 있는 우리 교회와 목회에 대한 시점 앞에서 많은 숙제를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용기도 필요하고 격려도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더욱 기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대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혼자서 싸우지 않고 그대들과 함께 싸울 수는 없을까? 먼저 장담하고 먼저 큰소리치기 전에 먼저 성도님들에게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어야겠다고 다짐한다. 한 목회자가 자신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마음을 알 때까지 강단에서의 무릎 꿇음을 계속하리라.

 

지금은 두렵다. 무엇이 두려우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솔직히 두렵다. 최 목사님도 처음에는 이런 두려움이 있었을까? 이 싸움을 이기기 위해서 어떻게 하셨을까?

앞에 골리앗이 버티고 서 있는 느낌이다. ‘나의 코끼리는 이렇게 생겼어’라고 말하는 성도님들의 주장을 헤치고 나아가 설득하고 확신을 보여주고 비전을 제시해야겠지. 조롱하는 거인 골리앗 앞에 선 이스라엘 사람들의 심정이 이랬을까? 그러나 만일 다윗의 믿음이라면 능히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연수 와서 본 것은 완제품만을 보았을 뿐이 아니겠는가. 이 완제품이 나오기까지 수 십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싸움이 있었을까? 앞에 보이는 골리앗을 무너뜨리고 요단강을 건넌 후에 다가올 새로운 시련들을 통해 이처럼 완제품을 만들기까지 흘려야 할 눈물이 있고 땀이 있어야 한다. 또 한 가지 두려움이 있다.

 

(나의 사랑하는 주여, 다윗의 믿음을 주소서. 혼자서 싸우지 말게 하시고 주님께서 뒤에 계시옵소서. 요단강 앞에 선 이스라엘 사람들의 두려움이 있습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끌고 약속의 땅을 향하여 나아가는 여호수아의 마음 같습니다. 주여, 여호수아에게 주셨던 약속을 주소서. 담대함을 주소서. 혼자서 건너지 말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같이 해 주소서. 주께서 그토록 원하시던 일, 주께서 그 일을 위하여 대신 목숨을 버리셨던 일, 죽어가는 영혼을 구하는 일이기에 주께서는 분명 기뻐하실 것입니다. 모든 일을 다 마치시고 이 일을 하라고 하늘로 들려 올라가시기 전에 이 세상을 향하여 유언으로 지성명령으로 주셨던 일, 그 일을 우리가 감당하게 하소서. 한 영혼을 구하는 일에 집중하게 하소서. 그 일을 위하여 비전 주심을 찬양합니다. 주여, 주의 일이 속히 부흥케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제목을 드려도 될까요?

1. 지혜롭고 확실한 준비를 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2. 영혼구원이라는 확실한 교회의 방향을 잘 제시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3. 말씀과 기도에 전무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4. 8월부터 시작할 생명의 삶을 통해서 성도들의 변화가 일어나게 기도해 해 주십시오.

5. 금년 11월에 있을 평신도세미나에 참석하는 분들이 변화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작성: 송영일 목사(휴스턴한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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